정은비 ‘마르시아스(MARSYAS)-타악기 독주를 위한 심포니’ 공연
정은비 ‘마르시아스(MARSYAS)-타악기 독주를 위한 심포니’ 공연
‘1919.3.1 희생자를 기억하며’를 주제로
다름슈타트 음악학교 코어드 마이에링 학장 3·1절 영감 얻어 작곡한 ‘마르시아스’
한복을 입고 기미독립선언문을 낭독하며 20여종 악기로 신들린 퍼포먼스 선보여
둥둥 두두둥 두두두두둥둥 … .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듯, 뭐든 집어삼킬 듯 한 적막 속에서 갑자기 벼락 치듯 요란한 북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런가하면 이내 낮고 작은 소리의 새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엔 비장하고도 결연한 목소리의 기미독립선언문이 낭독된다. “오등은 자에 아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차로써 세계만방에 고하야 인류평등의 대의를 극명하며 차로써 자손만대에 고하야 민족자존의 …….” “대한독립만세!” “대한독립만세!”
2019년 6월29일(토), 다름슈타트 음악학교(Akademie für Tonkunst Darmstadt) 빌렐름 페터슨 강당에서 3.1 운동 당시 유관순이 입었던 모양새의 흰 저고리와 검정 치마를 입고 무대에 오른 마림바 연주자 정은비(31·윤이상하우스 상주음악가)가 20여종 동서양 악기류와 자신의 목소리로 백 년 전인 1919년(기미년) 3.1운동의 대서사시를 풀어냈다.
다름슈타트 음악학교 코어드 마이에링(Cord Meijering) 학장이 3·1절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90분짜리 곡을 그녀에게 헌정했다. 곡은 ‘마르시아스(MARSYAS)-타악기 독주를 위한 심포니 (MARSYAS – SYMPHONY FOR PERCUSSION SOLO)’다. 하나의 ‘심포니’임에도 오케스트라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단지 한 사람의 연주자, 타악기 연주자인 정은비를 홀로 무대에 세웠다.
그리스신화 사티로스에 따라 ‘마르시아스’로 불리는 그 곡 주제는 `1919.3.1 희생자를 기억하며’이다. 1장 예술, 2장 도전, 3장 살껍질을 벗기우다 (기미년 3.1운동 희생자를 추모하며), 4장 카타르시스로 구성되었다. 예술과 경박, 잔혹함과 고통, 북의 발견, 그리고 일제에 대한 대한민국의 저항을 그려냈다. 100년 전인 1919년 3월1일 대한독립운동은 일본에 의해 처참하게 제압을 당했다.
오페라도, 뮤지컬도, 가극도 아닌 조금은 낯선 새로운 장르의 신들린 퍼포먼스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백여 명 관객의 숨소리조차 새어나오지 않는 엄숙한 공연장에서 정은비는 마치 독립운동으로 운명을 달리한 영혼을 달래는 제를 지내기라도 하듯, 온몸으로 처절하게 혼신을 다해 연주하고 공연을 했다. 그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고, 기립박수를 친 관객들은 한참동안 말문이 막혔다.
관객들은 정말로 쥐 죽은 듯이 집중해 공연을 관람했고, 90분이라는 긴 연주 시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는 반응들을 보였다. 기미독립선언서를 읊는 부분에서 한국인들은 눈물을 훔치는 사람도 있었고, 외국인도 말을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 절박함과 박력감에 전율을 느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으로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아픈 역사를 알게 되었다는 사람도, 3·1운동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한 말은 “Wunderbar 굉장해!”, “Sprachlos 말이 안 나와!”였다.
정은비는 “‘마르시아스’는 동서양의 타악기가 어우러진 박진감 넘치는 타악독주곡이자 인류의 숭고한 평화와 자주성에 대해 선언한 한국의 3·1독립운동과 그리스신화를 예술화한 작품이다. 동서양과 전설·역사뿐 아니라 현재 세계의 관심사인 한반도와 평화의 흐름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라고도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타국에서 우리의 3·1절 100주년을 나름의 방식대로 기릴 수 있어 개인적으로도 기쁘다. 또 공식적인 자리에서 우리의 3·1정신을 도이칠란트에 알릴 수 있게 된 셈이니 매우 뿌듯하고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 이 순 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