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정 세계한인여성협회(UWK) 총재가 도이칠란트를 찾았다
이효정 세계한인여성협회(UWK) 총재가 도이칠란트를 찾았다
FRANKFURT】 이효정 세계한인여성협회 총재가 평상시 즐겨 인용하는 ‘친정집’이나 다름없는 도이칠란트를 제 4대 총재 취임 이후 처음 찾았다. 그이로부터 앞으로의 포부와 재독 동포를 향한 애정 어린 마음 등을 들어봤다. 지난 6월 말, 장소는 슈발바흐에 위치한 문예원(원장 현호남)에서다.
지난 2019년 2월 22일 대한민국 국회의원회관 제 1간담회실에서 제 4대 세계한인여성회장협의회총재 취임식을 가진 이효정 총재는 설립 당시 명칭인 ‘세계한인여성회장협의회(WKWA, World Korean Women Association)’를 ‘세계한인여성협회(UWK, United World Korean Women)’라는 새 명칭으로 변경하고, 창립 당시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자신감 넘치는 일성을 토했다. 더불어 앞으로 세계한인 여성 글로벌네트워크 구성과 모국으로 돌아오는 세계한인 여성들의 창구인 세계한인여성회관건립 등 사업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세계한인여성회장협의회(WKWA)는 2013년 6월18일 재외동포 가정과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해 온 여성들의 단합과 친목을 도모하고, 해외동포여성들의 현황을 공유하고 미래를 향한 제도적 정책마련을 준비하자는 취지로 설립되어 초대총재 이효정을 중심으로 여성의 사회참여 기회확대와 권익증진을 위한 활동을 펴왔다. 이 총재에 이어 2017년에 3대 김소희 총재에게로 바톤이 넘어갔으나 이후 내부갈등으로 같은 이름의 유사단체가 생기는 등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에 이효정 총재가 창립 5년 만에 명칭을 바꾸고 본래의 취지대로 세계한인여성협회를 활성화시키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한 것이다.
이효정 총재는 1993년부터 도이칠란트 뮌헨에 거주, 2000년에서 2002년까지 뮌헨한인회장을 역임하였다. 당시에도 새로운 모멘텀으로 한인회의 활동영역을 넓혔다는 평을 받았다. 그리고 그 후에도 이 총재는 재유럽한인회 발전에 혼신을 다해 노력한 전력이 있다. 2008년 2월 세계한인유권자총연합회 출범과 동시에 도이칠란트 동포출신으로 사무총장을 맡아 한국에서의 활동을 시작한 이 총재는 2009년 6월 22일 세계한인여성유권자총연합회를 창립하고 총연합회장에 취임했다. 당시 이 회장은 창립선언문을 통해 여성의 정치지도력 배양을 위한 교육 및 지원사업 등을 활동목표로 내세운 바 있다.
세계한인여성협회 이효정 총재와 인터뷰
■ 우리뉴스 : 이효정 세계한인여성협회 총재님 안녕하십니까? 한국에서 적극 활동하시는 총재님을 도이칠란트에서 뵈오니 더욱 반갑습니다. 도이칠란트에 오신 특별한 계기라도 있으십니까?
▲ 이효정 총재: 네. 감사합니다. 실은 도이칠란트인 남편과 휴가차 왔습니다만 온 김에 그간 못 뵙던 여러분을 찾아뵙고 한국에서 제가 하는 일을 소개해 드리고, 또 앞으로 재독 동포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야 할지, 변했는지 동포 여러분과 말씀 나누고 있습니다.
■ 우리뉴스 : 2000년 뮌헨한인회장직을 시작으로 동포사회를 위해 활동하시다가 2013년부터 서울에서 세계 한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세계여성운동을 적극 전개해 나가고 계십니다. 특별한 동기라도 있습니까?
▲ 이효정 총재 : 뭐라고 할까요. 하나의 삶에서 저절로 발생된 마음인 것 같습니다. 제 나이 마흔 살에 도이칠란트인 남편을 만나서 처음 도이칠란트에 왔을 때 ‘처우라든가 대우 이런 것에 어떤 갭이 있다(한국과 비교하여). 뭔가 모를 공간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 삶을 살고 있구나!’ 이런 것을 느꼈습니다. 꼭 여성 인권, 이런 것이 아니라 사회가 여성을 보는 시각, 여성 활동 범위가 보장되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사회가 보장될 수 있었으면, 개인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변할 수 있었으면, 그런 마음에서 주변 사람들과 작게 시작했습니다.
■ 우리뉴스 : 총재님은 작게 시작하셨다고 하시는데, 그동안 큰 성과를 거두시고 총재님이나 세계한인여성협회라는 단체에 거는 기대도 큽니다. 그동안 어떤 어려움 같은 것은 없으셨습니까?
▲ 이효정 총재 : 겉으로 보기에는 쉬워보여도 한 단체를 만들어 내고 이끌어 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동안 재외동포들과의 끈을 놓지 않고 일을 하다 보니 재외동포들이 이웃이고 봉사활동을 할 대상도 그 분들이다. 그 분들에게 좀 더 개선된 환경을 만들어 드리려고 노력하다보니 지금까지 왔습니다.
■ 우리뉴스: 지난해 당시 명칭인 세계한인여성회장협의회가 둘로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이효정 총재 : 창립 7주년이 되니까 협회의 발전을 위하는 마음은 같으나, 가는 방향이 다른 사람이 생기면서 생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같이 봉사를 하는 사람의 의견의 차이에서 생긴 문제인데 그런 사람이 많은 것도 좋은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같은 목적과 같은 뜻을 가진 사람이 더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 우리뉴스 : 2017년 9월29일부터 10월1일까지 서울과 강원도 평창에서 ‘제4회 세계한인여성회장대회‘를 개최했고, 지난해 제5차 대회는 10월6일부터 8일까지 서울과 경주에서 성대하게 치러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6차 계획은 세우셨습니까?
▲ 이효정 총재 : 5차 대회는 서울과 지방도시인 경주에서 개최했습니다. 임진출 전 국회의원께서 준비위원장을 맡으셔서 좋은 프로그램으로 환대를 해주셨고, 주낙영 시장님도 환영해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시민들께서 조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수고하신 동포 1세대들의 경주 방문을 기꺼이 반기셨습니다. 올해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안은 나오지 않았으나 전주 한옥마을과 청주 두 곳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 우리뉴스 : 이번 방문길에 재독한인간호협회와 MOU를 체결하셨다고 하는데요. 그 부분에 관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 이효정 총재 : 저희 단체의 목적이 여성끼리의 교류가 아니라 작은 힘이나마 모아서 사회봉사활동을 하자는 것이고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하는 봉사의 목적은 고령화되는 제1세대에게 어떤 힘이 될 수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MOU도 “재외동포 고령화시대를 준비하자”로 했습니다. 도이칠란트 현지에서 동포들의 실상을 들으며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한국을 기점으로 협회를 만들어 같은 목소리를 내서 정부가 재외동포를 잊지 않도록 앞으로 고령화 사회를 위한 정책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준비를 하자는 것입니다. 현재 동포 1세대 U-Turn 프로젝트를 한국정부에서 할 수 있도록 호소하는 호소문을 만들어 서명을 받는 등 여러 가지 일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저희 협회가 재독한인간호협회와 협력하고자하는 이유는 간호협회가 재독동포사회의 이러한 어려운 일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협회 5차 대회 때 재독한인간호협회 의 이러한 헌신, 봉사 정신을 기려 윤행자 당시 회장이 봉사대상을 수상했습니다. 현재 박소향 회장도 독거노인방문 등 많은 봉사활동을 하는 것으로 압니다. 이제는 한국 공관과 기업, 정부가 더욱 재외동포 1세대에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십사하고 호소하고자 합니다.
■ 우리뉴스 : 총재님의 재독동포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에 대해 잘 들었습니다. 재독동포들 또한 총재님에 대한관심과 기대가 큰 것으로 압니다. 끝으로 재독 동포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기 바랍니다.
▲ 이효정 총재 : 일을 하다 보니 몇 사람의 힘으로는 어려운 일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재외동포사회에서 많은 분들이 저희가 하는 일에 공감하고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1세 재외동포들이 대한민국의 국익과 국격을 위해 얼마나 힘들게 사셨는데, 그렇게 이름 없이 쓰러져 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이효정 총재는 이 대목에서 몇 번을 울먹이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 아욱스부릌 한인회장에게서 들은 한 파독간호사의 슬픈 이야기를 전했다. “파독간호사로 아들 하나를 홀로 도이칠란트에서 물리학 박사로 훌륭하게 잘 키워 냈습니다. 그 아들은 한국에서 좋은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여 아들도 낳았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은 병으로 귀국한지 몇 년 되지 않아 사망했습니다. 홀로 도이칠란트에 남은 어머니는 양로원에서 생활했으나 치매에 걸려 한국말도 잊어버려 쉽게 연고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렵게 한국인과 연락이 닿았고, 한국인이라는 인연으로 한인회장은 그 분을 돌봐드리다가 돌아가신 뒤에는 친구 가족묘지 옆에다가 모시고 묘지관리까지 했는데, 이제 이장을 해야 할 형편이며, 이장 비용은 1,500유로가 드는데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하는 사연이다.
【 이 순 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