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 열사 114주기 추모식 및 광복 76주년 기념식

DEN HAAG】 (사)이준 아카데미( 원장 이기항)가 이준 열사 114주기를 맞아 추모식과 조국 광복 76주년 기념식을 거행했다.

2021년 8월 13일(금) 오후 4시 네덜란드 덴학(Den Gaag, 헤이그)소재 이준 열사 기념관(관장 송창주)에서 열린 이번 추모식 및 광복 76주년 기념식은 최영묵 목사(이준 기념교회) 진행으로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막이 올랐다.

이어 이기항 이준 아카데미 원장 개식사, 정연두 주네델란드 대한민국 대사 기념사,  얀 반 잔은(Jan van Zanen) 헤이그 시장 특별 기념사, 이준 열사 추모가 색소폰 연주(김동기), 조응천 국회의원(2선, 더불어민주당, 경기 남양주시갑) 기념사, 일본인 타카미츠 무라오카(Takamitsu Muraoka) 라이덴 대학교 명예교수의 특별 메시지 대독(송창주 관장) , 이준 열사 유훈 낭독(김유림 네델란드한국학생회장), 만세삼창(박종학 네덜란드한인회장) 순으로 진행됐다.

이기항 원장은 개식사에서 “금년은 이준 열사께서 1907년 고종황제의 특사로 헤이그에 오셔서 2년 전 을사늑약으로 상실된 우리나라의 주권(외교권)을 회복하려고 애쓰시다가 일본의 방해와 영국을 비롯한 식민열강들의 반대로 실패하자 <왜 대한제국을 제외하는가?>라는 항의문을 발표하고(1907.6.27), 7월 14일 일요일 오후 7시 그가 묵으시던 Hotel De Jong(현재 이준 열사 기념관)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묻혀 진토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114 주기를 기념하는 오늘은 슬픈 날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앉아 있는 이 자리는 매우 성스러운 자리입니다. 또한 이 자리는 네덜란드 속에 있는 대한민국의 문화영토 입니다.

그러나 그 분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습니다. 그 분의 죽음에 의분을 품고 국내에서는 의병항쟁이 들불처럼 일어났고, 바로 2년 뒤 만주 하얼빈 역에서는 안중근 의사에 의하여 을사늑약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처형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1919년 독립운동의 꽃인 <3.1 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역사는 강물처럼 흘러 드디어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40년(1905-1945)간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 해방의 날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기쁜 날입니다.”고 역설했다.

이어 이 원장은 정연두 주네덜란드 대한민국 전권대사, Jan van Zanen 헤이그 시장, 네덜란드 한인회 박종학 회장, 네덜란드 6.25 참전용사회 Gommers 회장, Jan Jansen Weltervre(박연) 기념사업회 Harmsen 회장, 하멜기념회 Sprakelaar 회장, Ed van der Feer 변호사, 그리고 이헌승(3선, 국민의힘, 부산 부산진구을), 조응천 국회의원 등 참석자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이날 행사는 코로나-19 백신접종 완료자만 참석하고, 또 마스크 착용, 간격유지 등 방역수칙을 엄격히 준수한 가운데 진행됐다.

2부 순서로  참석자들은 이준 열사 기념관을 둘러보았다.

한편, 이날 행사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발표할 예정이었던 일본인 타카미츠 무라오카(Takamitsu Muraoka) 라이덴대학교 명예교수가 코로나-19 백신접종 미완료로 인해  참석치 못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다음은 송창주 관장이 대독한 무라오카 교수의 메시지 <광복절 감회> 요약본이다

“저는 1945년에는 7살 어린 소년이었기 때문에 지난 20 세기 전반 50년 동안 한국민에 대한 일본의 학정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사는 일본의 기독교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일본이 한국민들에게 끼쳤던 역사적인 죄악상을 낫낫이 거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지난 30년 동안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공부하였고 또한 가급적 많은 일본인들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서 가장 치욕스럽고 가슴 아팠던 사건은, 소위 “Comfort Women” 즉 위안부 문제입니다. 1991년 8월 14일 이 문제에 관하여 김학순 할머니가 “내가 바로 위안부였다,”고 과감하게 밝힘으로서 드디어 이 문제가 역사의 표면으로 떠올랐습니다.

이에 일본은 아베수상(安倍)의 이름으로 모든 위안부들에 대하여 사죄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한국을 방문하여 박근혜 대통령을 만났을 때, 왜? 위안부 할머니들을 직접 찾아가 만나서 사죄하지 않았는지?

또 서울에 주재하고 있는 일본 대사가 할머니들의 장례식에 왜 참석하지 않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16년 12월 28일, 일본의 아베 수상과 미국의 Obama 대통령이 하와이에서 만났습니다. 만나서 1941년 12월 8일 선전포고도 없이 일본이 하와이에 있는 미군 기지를 기습적으로 폭격하여 수천 명의 인명 피해를 입힌 것에 대하여 일본과 미국 두 나라는 원만하게 이 문제를 매듭짓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에 대하여 두 나라의 어떤 언론도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아베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베의 이런 처신에 동조하는 일본의 황실 그리고 일본인들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끝으로 “과거를 무시하면, 현재도 없고 미래도 없다. Without past, there is no present or no future.”라는 말을 끝으로 이만 저의 말씀을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 종 헌 기자】 【제공: (사)이준 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