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독 조선기술인 50주년 기념 행사 성황

HAMBURG】1970년대 초 파독된 한국인 조선기술인들이 50주년을 맞아 성대한 기념행사를 펼쳤다.

재독한인조선기술인협회(회장 인원찬)가 ‘파독 조선기술인 50주년 기념행사’를 2022년 6월 11일 함부르크-하우스(Hamburg-Haus)에서 개최한 것이다.

유정일 전 회장 사회로 1부에서는 국민의례, 인원찬 회장 환영사, 정기홍 주함부르크총영사 축사, 방미석 함부르크한인회장 축사(대독 김진호 수석부회장), 고창원 (가칭)동포총연합회장 축사, 총영사 공로장 전달 순으로 진행됐다.

인원찬 회장은 환영사에서 먼저 참석해준 하객 및 회원 가족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아울러 행사 준비에 수고를 아끼지 않은 임원, 회원들의 노고를 위로했다.

인 회장은 “1971년, 72년에 세 번으로 나뉘어 300여 한인 조선기술인들이 파독 되었다. 당시 우리 조선기술인들은 열과 성을 다해 열심히 일하며 조선소와 선박회사의 인정을 받았다”고 소환했다.  또 “우리는 당시 도이칠란트의 선진 조선기술을 배워 기술도 장비도 변변치 못했던 고국에 전수하며 한국의 조선 산업이 세계최고로 발전하는데 일조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정기홍 총영사는 축사에서 “조국이 어려울 때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고향산천을 떠나 이국땅에 정착한지 50년, 그동안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고국경제 발전에 기여했다고 평가받고 있는데 비해, 파독 조선기술인들이 기여한 공적에 대한 평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어 정 총영사는 “파독 조선기술인들의 헌신과 숨은 노력 덕분에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그간의 노고를 위로했다.

또 정 총영사는 대한민국 정부를 대신해 재독한인조선기술인협회에 단체 공로장을 전달했다. 이로서 조선기술인들이 파독된 이후 도이칠란트에서 성실히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한국 조선기술의 위상을 높이고, 더 나아가 한국과 도이칠란트간 호혜적 교류증진에도 크게 기여한 공적을 인정받은 셈이다.

방미석 한인회장은 김진호 수석부회장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우리나라 3천5백만 인구중 농업 인구가 70%였던 가난한 시기에 부모 형제를 멀리하고 외국 일터에서 피땀 흘리며 열심히 일한 여러분들 덕분에 현재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었다”며 이 자리를 빌어 여러분들의 뜨거운 애국심과 용기, 희생정신에 감사와 위로의 인사를 드린다고 했다.

고창원 회장은 축사를 하고 모든 회원들에게 ‘다모아 전동 맛사지기’를 선물하며 건강한 노후 생활을 기원했다.

150여 참석자들은 주최측에서 제공한 비빕밥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2부에서는 인원찬 회장 사회로 먼저 회원들이 단체로 무대에 올라 김재림 피아니스트 반주에 맞추어 ‘홀로 아리랑’을 합창했다.

이어 정다운, 마틴 아벤트로트, 고흥문, 김소자 씨 등이 출연한 단막극 ‘조지 브라운(George Broun)’ 공연은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미국으로 시집간 딸과 80세의 한국 친정어머니간의 전화 통화에서 언어 소통의 문제를 겪으며 노부모가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면서 엉뚱한 상상과 엉뚱한 대화로 이어지는 스토리로 관중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이어 인원찬 회장이 ‘아침이슬’을 독창하고 ‘스님과의 대화(유정일)’, 최상범, 이인하, 주최유 회원 3인의 ‘남자의 인생’ 중창, ‘등대지기’ 독창(수민 Ruth, 6세) 등이 이어졌다. 반주는 김재림 피아니스트가 수고했다.

‘스님과의 대화’에서는 한 노모가 40이 넘은 노총각 아들을 장가 보내기 위해 스님의 조언을 구하는 내용으로 “노총각 아들이 장가갈 마음으로 몇 번 맞선을 보았지만 마음에 드는 여성을 못 만났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스님 왈 “내 마음에 꼭 드는 여자는 세상에 없다”며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어떤 여자이던 결혼하여 서로 협력하고 맞추어 가면서 살면 된다”고 조언했다.

이날 행사의 절정은 회원들이 보여준 ‘배 만들기’ 시연으로, 50년 전 입고 쓰던 작업복과 헬멧차림으로 도크에서 수중용접, 선박제작 등 조선작업 현장을 재현했다. 마지막 장에 완성된 콘테이너화물선이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자 장내가 떠나갈 듯한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회원들이 무대에 올라 ‘고향의 봄’을 합창하며 행사가 막을 내렸다.

인 회장은 우리뉴스와 단독인터뷰에서 “회원들의 노령화로 인해 어쩌면 마지막 행사가 될 수 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를 느끼고 미래의 희망을 담아보려고 행사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또 안 회장은 이날 행사 프로그램이  한국어와 도이치어로 비머 스크린에 계속 비춰져 한국인, 도이치인 모두의 이해를 도와준 김요섭 컴퓨터 전문인과  또 경쾌한 음향을 제공해  연로한 회원들이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잘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해 준  조흥곤 음향장비 전문인에게 특히 감사했다.

한편, 한인 조선기술인들은 1971년 72년에 함부르크 소재 호발트(Die Howaldtswerke-Deutsche Werft GmbH ,HDW) 조선사와 3년간 근로계약으로 300명이 진출했다.

이후 1970년대 중반 전세계를 강타한 유류파동(오일쇼크)은 호발트 조선소 직원감원으로 이어졌고, 취업연장 허가를 못 받은 260여 조선기술자들은 귀국, 또는 제 3국으로 이주해야만 했다.

이후, 한국의 산업 급성장으로 국제경쟁력을 갖춘 한국의 조선회사들이 전세계 시장을 석권하며 급부상하였고, 결국 1983년 호발트 조선소는 경영란에 봉착, 영국의 한 선박회사에 매각되며 호발트 조선소는 분해되었다

호발트 조선소의 감원과 매각, 분해 등의 사유로 실직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타 조선사로 이직하는 등 어려움을 극복하며 위기를 이겨낸 40여 명의 한인조선기술인들이 함부르크에 정착했다.

하지만 당시 펄펄했던 20-30대의 청년들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모습으로 20명이 남아 함부르크 한인동포사회의 한 축을 지키고 있다.

이날 50주년 기념행사는 재외동포재단, 주함부르크대한민국총영사관, 함부르크한인회 등이 후원했다.

【정 명 옥 명예기자】(사진 임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