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송준근 전 이미륵 기념사업회장 영결식 엄수
München】 고 송준근 전 이미륵 기념사업회장 영결식이 2022년 8월 16일 14시 30분 뭔헨 베스트시립묘원(Westfriedhof)에서 가족, 친지들이 애도하는 가운데 엄수됐다. 영결식은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이날 영결식은 이미륵 박사 추모사업에 헌신해 온 신순희(Liebhart) 전 뮌헨한인회장이 먼저 유창한 도이치어로, 이어 한국어로 조사를 낭독하며 고인의 영면을 빌었다.
이어 고인의 조카사위인 최진용씨가 한국의 프르메재단 백경학 상임이사의 추도사를 낭독했다.
김화란 뮌헨여성합창단장이 애국가를 경건하게 부르기 시작하자 조객들도 함께 따라 제창했다.
묘역으로 이동 한 뒤, 김화란 뮌헨여성합창단장과 조객들이 부르는 ‘고향의 봄’ 선율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하관식이 진행됐다.
토마스 엘스터(Thomas Elster) 주 뮌헨 대한민국 명예영사, 조일규 코트라 뮌헨무역관장, 오시원 뮌헨한글학교장, 이명옥 전 교장, 박희석 전 베를린대 교수, 백재숙 아욱스부르크한인회장, 한정순 전 회장, 정흠일 전 보덴제한인회장, 이종미, 신순희 전 뮌헨한인회장, 전덕문 전 이미륵 기념사업회 부회장, 남정호 원로언론인, 서윤남, 조복남 태권도 원로사범, 고영재 태권도사범, 엄혜순 한국전통예술원장 등 80여 조객들은 유족 측에서 준비한 하이얀 카네이션을 한 송이씩 관위에 던지며 고인과 영원한 작별을 고하고 고인의 편안한 안식을 기원했다.
1970년 파독 광산근로자로 도이칠란트에 정착한 고인은 오랜 기간 동안 뮌헨한인회장, 이미륵 박사 기념사업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한인동포사회 발전과 위상제고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고인은 2009년 이미륵 박사 묘지 영구보존을 위한 모금 운동을 전개, 부산저축은행의 도움으로 그레펠핑시와 이미륵 박사 묘지 영구 임대계약을 완결하였다.
한편 장례식이 끝난 후 유족측에서는 조문객 전원을 근처 카페로 초대, 다과를 대접하며 영결식 참석과 조문에 대한 사의를 표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영례 여사와 장남 인호, 자부 이은정, 장녀 송세희, 사위 Marcel May, 손자 용기, 손녀 유미, 외손녀 Mina 등이 있다.
아래는 신순희 씨가 낭독한 조사와 프르메재단 백경학 상임이사의 추도사이다.
【이 순 희 기자】
<조사>송준근 회장님 영전에서.
이제 회장님과 뮌헨에 살고 있는 한인들의 인연이 막을 내리는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40여년 전 뮌헨에 한국식품을 살 수 있는 가계가 생겼다기에 찾아가 보니 젊은 부부가 두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와서 새로운 출발을 하셨습니다.
이곳에 사는 한인들과 한국음식을 좋아하는 외국인들은 송 회장님의 가계를 찾고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수십 년이 지나고 송 회장님의 상점은 누구나 찾게 되는 장소로 변했습니다.
세월은 흘러가고 송 회장님 내외분은 한인사회에 많은 사랑을 베푸시는 원로가 되셨습니다.
지금은 한인회가 사단법인으로서 회비를 받으면서 운영되고 있지만 옛날에는 회장을 하시는 분이 연말이 되면 타지에서 외롭지 말라고 연말잔치를 하곤 했지요.
두 내외분이 장만한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도움이 필요 하신 것을 그때는 왜 생각하지 못했는지, 지나고 나니 후회스러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장만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경험한 사람들만 알 수 있지요.
이렇게 한인사회를 위해 힘쓰셨고 또 송 회장님께는 더욱 큰 과제가 1950년 타개하신 이미륵 박사님의 묘소관리와 해마다 삼월 이면 박사님의 기일을 추모하는 행사가 회장님의 일상에 깊이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오래전부터 가족이 간소히 추모식을 해 오고 계셨습니다.
1999년 괴테포름에서 고 이미륵 박사님의 100번째 탄신기념행사에 조금 도움을 드리며 송 회장님의 생각을 알게 되었고 이곳에서도 나와 같이 이미륵 박사님을 기리는 분이 계신 것에 놀랄 뿐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삼월 추모식에 참석하며 회장님의 생각을 차츰 알게 되었습니다.
뮌헨에 오는 사람들은 송 회장님을 한국에서부터 알고 오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독일 뮌헨에 가면 송준근 이라는 분이 계시는데 꼭 찾아뵈어야 한다고요.
회장님이 계신 곳이 뮌헨의 중심이었고 중요한 정보뿐만 아니라 도움도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당신이 한국의 지인들을 통하여 신문에 낸 도움 요청건으로 많은 분들로 도움을 받게 되어서 고 이미륵 박사님은 그레펠핑 공동묘지에 영구적으로 쉴 수 있게 되셨습니다.
사실 그때까지 그레펠핑 묘소에는 이런 예가 없었고 아직도 이 공동묘지에는 이 같은 예가 없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당신의 이미륵 박사님에 대한 사랑 또한 변함없는 인간애로 옛날 이곳에서 이방인으로 사시면서 생을 마감하신 분 또한 우리의 이방인으로의 인생과 그리 다르지 않다 생각하셔서 이곳에 한인들이 같이 할 수 있는 집을 마련하고 싶어 하셨지요.
그레펠핑 시장님을 찾아뵙고 아이같이 졸라도 보시고 도움도 요청하셨지만 당신은 이제 먼곳에서 바라보실 뿐이네요.
어느 누군가가 앞장서서 이곳에 사는 한인들을 위한 집 한 채를 마련할 때까지.
매년 삼월 추모식에 저희와 같이하시며 이미륵 박사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기뻐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송준근 회장님,
사람을 좋아하시고 더욱 이미륵 박사님을 존경하시고 무척 사랑하시던 회장님이 이곳 뮌헨에 계시지 않는 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이제 당신의 육체는 이곳에 계시지 않지만 혼은 자유로이 바람처럼 구름처럼 원하시는 곳으로 훨훨 나르소서. 편히 쉬소서.
신순희 올림
<추도사> 송준근 회장님 영전에…
1997년이니 지금으로부터 25년전 일입니다.
송준근 회장님과 소설 “압록강은 흐른다”의 저자 이미록 박사의 초상화를 어렵사리 구입한 후, 초상화를 가슴에 품고 행복해 하시던 회장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송 회장님은 이미륵 박사의 묘지를 그레펠핑 묘지 안에 세우셨고, 그의 동상이 독일 한인사회 곳곳에 세워지도록 하였으며, 이미륵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추모행사를 주도하셨습니다.
얼마나 외롭고 힘든 일이었을지 상상해 봅니다.
한국 사람들이 뮌헨을 찾을 때면 공항까지 손수 마중 나오신 송 회장님은 그레펠핑 묘소로 안내하시어 이 박사의 업적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말년에는 당신이 평생 고생하여 장만한 상점을 이미륵 박사 기념관으로 개조해 이 박사의 행적을 소개하고 정신을 알리는데 노력하셨습니다. 당신의 헌신 덕분에 오늘의 이미륵 박사가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송 회장님은 저와 유학생들, 교민들에게 특히 아버지 같은 존재였습니다. 주말이면 교민들을 이끌고 알프스로 소풍을 가서 손수 준비하신 음식을 나눠 주셨습니다. 유학생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으면 마치 당신의 일처럼 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다니셨습니다.
제가 귀국하기 전 저희 가족은 영국으로 자동차여행을 떠났다가 아내가 혼수상태에 빠지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때 저에게 보내신 편지에서 “절대 포기하지 마라. 부인이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격려하셨습니다. 편지와 함께 한국음식이 가득 담긴 소포를 받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어려운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 곁에는 늘 당신이 계셨습니다. 한국에서 일어난 자연재해와 정치적 혼란을 누구보다도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송준근 회장님을 보면서 한 사람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절감했습니다. 당신은 거인이었습니다. 비록 파킨슨병으로 인해 당신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셨지만,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과 보여주신 숭고한 정신은 남은 사람들에게 길이길이 기억될 것입니다.
송 회장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고통이 없는 그곳에서 평안히 잠드시길 기도합니다.
푸르메재단 백경학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