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불고 권영호 회장 제 10회 장보고한상 어워드’대상’ 수상

스페인의 인터불고 권영호 회장이 제10회 장보고한상 어워드(장한상)  ‘대상’을 수상했다

(사)장보고글로벌재단(이사장 김덕룡)과 전남 완도군(군수 신우철)은  2025년 9월 28일 전남 완도 농어민문화센터에서  제10회 ‘장보고한상 어워드’ 시상식을 거행했다.

김덕룡 이사장이 인터불고 권영호 회장에게 장보고한상 어워드 ‘대상’을 시상하였다.  김 이사장은 축사에서 “돈을 버는 것은 기술이고 돈을 잘 쓰는 것은 예술인데 그 예가 바로 권영호 회장이다” 며 수상을 축하했다.

박종범 세계한인경제무역협회장이 시상식에 직접 참석해 권 회장의 수상을 축하했다. 박 회장은 2018년 당시 영산그룹회장으로  제3회 장보고한상 어워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장한상(張韓商)이란? = 한상(韓商)은 19세기 중반부터 간도와 만주, 일본, 사할린, 러시아,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오늘날까지 전 세계로 이주, 정착한 180개국 750만 명의 재외동포(코리안 디아스포라) 가운데 재외동포경제인을 가르킴. 불세출의 영웅이며 한민족의 사표(師表)인 장보고와 글로벌 시대, 민간외교관이면서 해외시장 개척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한상(韓商)을 결합한 단어

시상식에서 밝혀진 권 회장의 공적 사항은 다음과 같다.

태평양에 동원산업 김재철이 있다면, 대서양에는 권영호가 있다. 원양업계에서 한때 회자 된말이다. 권영호회장은 스페인 라스팔마스를 전진기지로 중부아프리카 대서양을 개척했다. 라스팔마스는 아프리카 서북부 카나리아제도의 7개 섬 가운데 그란카나리아 군도의 수도다.

그는 1966년 국내 최연소 기관장으로 원양어선을 탔다. 그의 첫 승선지는 프랑스였다. 26세 때였다. 해외여행은 꿈도 꾸기 힘든 시절, 한국수산개발공사가 프랑스에서 건조한 참치연승어선을 타기 위해 프랑스의 한 조선소로 가는 길은 참으로 멀었다. 김포공항에서-> 일본, 알라스카, 스위스를 거쳐 파리에 도착해 다시 기차를 타야 했다. 그 항해는 길고 외로운 항해였다. 그는 경상북도 울진에서 가난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바다가 나의 천직”이라는 선친의 피는 그에게 이어졌다. 평생 바다와 함께 살아온 그는 바다 색깔만 봐도 어떤 고기떼가 얼마나 지나가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한국 원양어업이 최고의 호황을 누렸던 1970~1980년대, 대서양 어업은 라스팔마스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그는 선원에서 1971년 대림수산 기지 주재원으로 라스팔마스에 가족과 함께 살게 되면서 기업가의 꿈을 키워 나갔다. 우리나라 원양어업 선구자, 대서양의 장보고, 선박왕 오나시스로 고기의 아버지로 어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회자되기까지 그는 휴가 한번 가본적이 없고 잠을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는 원양업계의 산증인이다.

당시 우리 기술력이 미천한 시기, 회사의 배려로 선박에 설치되어있는 각종 기기 연수를 하면서 열악한 기술력에 앞장섰던 원양어업의 개척자로서 자부를 느낀다고 했다.

그는 1979년 일본 폐선(廢船) 한 척으로 시작해 한때 자산 10조원대의 기업으로 키웠다. ‘스페인 선박왕’으로 불리는 그의 성공 스토리는 2015년 우리나라 고등학교 인정 교과서 ‘진로와 직업’에도 실렸다. 고철 선박 한 척으로 20년 만에 어선 50여척의 대선단이 됐다. 동원산업 김재철 회장이 태평양 사모아 기지를 근거지로 신화를 만들 때, 권 회장은 서부 아프리카 대서양을 주름잡았다.

해외에서 번 돈 조국에 투자하다.

그의 애향심은 남다르다. 그에게 인생에서 가장 짜릿했던 순간을 묻자 “바다에서 번 돈을 들고 와서 조국에 투자할 때, 가난한 젊은이들에게 장학금을 주기 시작할 때”라고 답했다. 그는 1986년 동영장학재단을 만들어 장학금을 주기 시작했다. 국내 사업이 어려움에 직면한 지금에도 2025년 지방출신 대학생 등 100여명에게 1억원을 지원했다. 장학 사업은 2025년 기준 39년째가 된다. 수혜자 지원규모가 국내외 1만9천4백명이며, 금액으로는 180억에 달한다고 했다.  2008년엔 계명대에 임야 243만4500㎡(73만6000평 당시250억)를 기증하기도 했다. 또한 우리나라 산업화에 따라 지방도시 국제화에 동참하여 여러 곳에 관광업을 발판으로 국제도시화에 기여한 바 크다고 자부했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는 1995년부터 조선족 선원을 채용하고 조선족 중고등학교에 항해, 기관과를 설립하여 5회 졸업생을 내고 선장, 기관장을 양성했다. 선원들의 고향마을에 자선 병원을 설립하고, 양로원 등지에 1만 여대의 TV를 기증, 조선족 학교에 교육 기자재를 지원하고, 농촌 농로를 내어주고, 길림성 길림대학에 단과대학을 설립했다. 또한 대학 내에 식품공장을 만들어 그 수익금은 전액 장학금에 사용하고 있다. 스페인 마요르카에 있는 우리나라 애국가를 작곡한 고 안익태 선생(1906~1965)의 유택을 사서 정부에 기증한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가족과 자신에게는 자린고비다. “쓸 것 다 쓰고 어떻게 남을 도울 수 있는가” 평생 그의 지론이다. 그분의 아들은 난 아빠처럼 살고 싶지 않지만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아버지라고 한다. 수상소감에서도 그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부하는 것이 가정 안전한 투자라고 했다. 외국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조국의 사업은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그러나 내 조국이기 때문에 어려움을 정신적으로 극복했지만, 현업에서 물려나야 하는 시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그의 전용차는 소형차에다 비행기는 퍼스트/비즈니스 클래스를 타본 적이 없다. 바다에서 꿈을 키우고 위기를 배우고 삶을 이어온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바다는 언제나 우리 것이고, 우리에게 그 대가를 돌려줄 것으로 확신한다”. 바다에서 건진 수많은 황금을 그는 고국에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그 분의 삶은 진심이다. 오로지 남을 위해 희생한 삶, 장보고한상어워드 대상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는 어쩜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가 최수종에게 (장보고(해신)드라마에 사용했던)선물받은 소중히 간직했던 대도(劍)마저 장보고한상 명예의 전당에 기증했다. 이제 우리 후손들이 완도 장보고한상 명예의전당을 방문할 때 마다 대서양의 장보고 권영호, 선박왕 오나시스, 바다의 아버지 권영호를 기억하고 그의 기업정신과 민족과 나라를 위한 애국심, 다 여기에 나열하지 못한 기부와 봉사정신은 영원히 우리에게 기억되고 전하여 질 것이다.

권영호 회장님의 장보고한상어워드 대상 수상을 축하하는 바이다.

한편 이날 장보고한상 어워드  시상식에서 대상 권영호 회장 이외에도 국회의장상에 최영철 사나그룹 회장(케냐), 문체부 장관상에 김종순 JS 홀딩스 회장(영국), 농식품부 장관상에 전미자 아카키코 회장(오스트리아), 산업부 장관상에 박원규 넥스트트레이딩 회장(콜롬비아), 해수부 장관상에 하순섭 한파 그룹 회장(팔라우) 등 총 6명이 수상했다.

【유 종 헌 기자】 (자료제공: 김학순 유럽총연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