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마르크의 추억과 베를린의 사골국(노석임)

  1.  50마르크의 추억과 베를린의 사골국

사골국, 삼계탕, 소고기 꼬리곰탕. 그 깊은 맛의 깊이를 알기엔 내 간댕이(?)가 너무 부풀어 있었던 이십 대 초반, 나는 야무진 꿈 보따리를 싸 들고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돈 벌어 고향 집에 보내고 못다 한 공부도 하겠다는 기특한 생각은 가득했지만, 정작 내 몸 하나 건사할 곰탕 한 그릇에 얼마큼의 정성이 들어가는지는 전혀 몰랐던 서툰 시절이었다.

요즘 베를린의 겨울 날씨는 그야말로 ‘변덕스러운 마술사’ 같다. 지난주에는 솜사탕 같은 눈이 온 세상을 덮더니, 며칠 전엔 영하로 곤두박질친 길거리가 거대한 스케이트장으로 변해 내 걸음걸이를 펭귄으로 만들었다. 그러더니 오늘은 또 살얼음이 유리알처럼 반짝이며 발길을 붙잡는다. 이런 날씨엔 영락없이 뜨끈한 사골국물이 간절해진다.

기억을 거스르면 기숙사 언니들이 떠오른다. 동독과 서독이 서슬 퍼렇게 갈라져 있던 시절, 우리가 살던 서베를린의 ‘카데베(KaDeWe)’는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세상에서 제일 큰 백화점이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곳은 눈으로만 맛보는 ‘아이쇼핑’의 성지였다.

한 달 월급이 들어오면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삼삼오오 떼를 지어 ‘베를리너 방크(Berliner Bank)’로 향했다. 이제는 이름마저 ‘도이체 방크’로 바뀌어 사라진 그 은행 문을 두드리는 일은, 나뿐만 아니라 기숙사 식구들 모두에게 매달 치러지는 엄숙한 행사와도 같았다.

고국에 계신 부모님께 한 푼이라도 더 보내기 위해, 딱 50마르크의 한 달 생활비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모두 송금 봉투에 담았다. 주머니는 가벼웠지만 마음만은 부자가 된 것 같았던 그 시절, 우리는 텅 빈 지갑을 달래며 카데베의 화려한 고기들을 구경하는 것으로 허기를 채우곤 했다.

그러다 큰맘 먹고 사 온 사골 뼈를 커다란 냄비에 넣고 몇 시간을 푹 고아내면, 베란다 차가운 공기에 식혀둔 냄비 위로 하얀 기름층이 두껍게 내려앉았다.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진, 녹다 남은 길 위의 얼음 조각들이 딱 그 모습이다. 반쯤 투명하면서도 단단하게 굳어버린 그 얼음 모양이, 그 시절 냄비 속에서 걷어내던 사골 기름과 어찌 이리도 닮았을까.

내가 결벽증 환자처럼 기름을 박박 긁어내고 있으면, 언니는 인심 좋게 웃으며 한마디 던졌다.

“야, 이 가시나야! 기름을 너무 다 걷어내면 맛없어. 입술에 기름기 좀 칠해져야 고소하고 살도 오르는 법이야!”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배추겉절이 한 접시를 놓고, 기숙사 좁은 방에서 왁자지껄 떠들며 국물을 나누던 풍경이 빛바랜 필름처럼 지나간다. 그 50마르크로 버티던 날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단단한 뼈대가 되었으리라.

다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한국으로, 미국으로, 혹은 이름 모를 독일의 어느 작은 도시로 뿔뿔이 흩어졌지만, 어쩌다 건너 들려오는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이 최고의 보양식이다.

오늘은 추억을 내복처럼 든든히 껴입고 다시금 그 시절의 ‘카데베’로 가보려 한다. 이번엔 기름기 걷어내는 법을 가르쳐줄 언니는 없지만, 대신 60년 베를린 짬밥으로 다져진 내가 나 자신에게 ‘고소한’ 사골 뼈 몇 덩이를 선물해줘야겠다. 이제는 50마르크보다 조금 더 써도 괜찮을 만큼 세월이 흘렀으니 말이다.

【 글 : 노 석 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