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가운을 무기 삼아 건너온 망망대해(노석임)

3. 하얀 가운을 무기 삼아 건너온 망망대해
내가 내 삶의 여정을 이렇게 글로 차분히 정리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것이 전부였던 긴 세월이었습니다. 이제야 멈춰 서서 지나온 굽이굽이 길들을 돌아보며, 내 생애 첫 기록이었던 그날의 문장들을 다시 꺼내 봅니다.
50년 전, 부산항의 파도 소리를 뒤로하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때 부산일보와 국제신보 지면에는 나의 짧은 다짐이 실렸지요.
누구에게 보낸 사연인지도 모를,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서슬 퍼런 맹세와도 같았던 그 한 조각의 글이 나의 첫 글이었습니다.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에게 총칼이 필요하듯, 나는 하얀 가운을 무기 삼아 낯선 땅 독일로 떠난다.”
그때는 참으로 비장했습니다.
그 하얀 가운 하나에 의지해 건너온 망망대해였습니다.
복숭아처럼 맑았던 20대 초반의 피부는 이제 세월의 풍파를 견딘 거친 지도가 되었고, 어느새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받는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때로는 희망에 부풀어 독일의 하늘을 우러러 보았고, 때로는 망망대해 위 나룻배처럼 고독과 무서움에 떨었던 50년의 세월.
이제는 그 흩어진 기억의 파편들을 하나둘 모아보려 합니다.
나는 화려한 문학적 미사여구는 모릅니다.
그저 독일어와 한국어 사이에서 서성였던 이방인의 마음과, 하루하루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을 수 있게 된 지금의 일상을 그림처럼 펼쳐 보이고 싶습니다.
이 투박한 기록이 지금도 자신만의 거친 바다를 지나는 또 다른 나룻배들에게 작은 위로와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글: 노석임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