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kg 가방에 담긴 지독한 사랑, 이 정도면 병인가요?(노석임)

-베를린 55년의 삶-

6.    23kg 가방에 담긴 지독한 사랑, 이 정도면 병인가요?

재작년 한국 휴가를 떠나기 전, 거실에 놓인 23kg짜리 가방 두 개와 터질 듯 한 배낭을 보며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상 주는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이러고 사나” 싶어 스스로가 한심하다가도, 막상 짐을 빼려고 보면 ‘이건 누구네 꺼, 저건 누구네 꺼’ 이름표가 붙어 있어 손을 댈 수가 없다.

공항에서 가벼운 가방 하나 달랑 들고 모델처럼 걷는 사람들을 보면 세상 제일 부럽지만, 내 팔자는 아무래도 ‘짐꾼’으로 정해진 모양이다.

독일 생활 55년, 시작부터 그랬다. 동생들에게 독일 학용품을 소포로 부치던 게 낙이었는데,

어느 날 동생이 “언니, 이제 제발 그만 좀 보내!”라고 소리를 지르더라. 그때 느낀 서운함이란! 그래도 정신 못 차리고 언니 주겠다고 그 무거운 스팀다리미를 들고 갔을 땐, 언니가 기함하며 말했다.

“얘, 한국에 이런 거 널렸다! 제발 몸뚱이만 좀 오너라!”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해 한국이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됐다는데, 내 머릿속 은퇴할 생각이 전혀 없나 보다.

진짜 코미디는 돌아오는 공항에서 벌어진다. 수하물 무게 초과 경고등이 들어오면 그때부터 나의 ‘변신’이 시작된다.

가방에서 옷을 꺼내 입기 시작하는데, 얇은 티셔츠 위에 조끼, 조끼 위에 자켓, 그 위에 또 코트, 마지막으로 큼지막한 폰초까지 둘러쓰면 내 몸은 흡사 거대한 양배추가 된다.

공항 직원이 나를 보며 “어디 아프세요?” 혹은 “안 더우세요?”라는 눈빛을 보내지만,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당당하게 미소 짓는다. ‘이게 다 돈이고, 이게 다 정이다!’

비행기 좌석에 앉으면 안전벨트가 안 채워질 정도로 뚱뚱해진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처량하기도 하지만, 이 버릇이 어디 갈까.

옛날 가난하고 없던 시절, 무엇이든 가져다주고 싶었던 그 절박함이 55년이 지난 지금도 내 몸에 새겨져 있는 것 같다.

올 10월 한국행도 이미 글렀다. 벌써부터 “이건 꼭 가져가야 해”라며 리스트를 적고 있는 나를 보니, 올해도 공항에서 옷 다섯 겹 껴입은 ‘양배추 할머니’를 예약한 셈이다.

(글: 노석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