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의 나라에서 부르는 밥의 노래

-베를린 생활 55년-
7. 빵의 나라에서 부르는 밥의 노래
내 인생의 3분의 2를 ‘브로트(Brot)’의 땅에서 보냈건 만, 내 영혼의 안테나는 여전히 ‘밥’에 만 고정되어 있다.
피자를 먹으러 가자면서도 입으로는 “내가 밥 살게!”가 튀어나오고, 저녁으로 빵 조각을 씹으면서도 전화기로는 “밥 먹었니?” 라고 묻는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시절, 입에 ‘풀칠’조차 못 한다는 서러운 말의 뿌리가 결국 밥물에서 나온 ‘풀’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밥’은 내게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생존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 내가 오늘, 50년 지기 친구에게 그 귀한 ‘밥’ 한 끼 제대로 사겠노라 큰소리를 쳤다. 약속 시각은 정오 12시. 지하철로 한 시간 거리니 서두를 것 없다 싶었지만, 작가랍시고 잉크 냄새를 맡기 시작한 뒤로 건망증이 친구 하자고 덤빈다. “아 참, 또 잊었네!”를 연발하며 집안을 들락날락, 안경 찾고 가방 챙기다 보니 30분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결국, 한 시간 전부터 ‘모찌’가 든 시장 가방(Einkaufswagen)을 끌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세상에나, 가는 날이 장날이 라 더니 베를린 지하철이 ‘올 스톱’ 이다. 안내 판은 야속하게 다른 길로 가라고 깜빡이는데, 시장 가방 안에 든 우리 상전 ‘모찌’를 모시고 그 험난한 길을 갈 엄두가 안 난다. 결국 버스로 눈을 돌렸지만, 버스 정류장은 이미 기차역 대합실처럼 인산인해다. 20분에 한 대 오는 버스에 나 혼자라면 억지로 라도 몸을 구겨 넣겠건 만, 모찌가 든 가방은 ‘입석금지’ 수준이다.
다음 버스를 기다리며 타는 가슴으로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나 좀 늦어!” 하지만 카톡의 수신 확인 숫자 ‘1’은 요지부동이다.
‘이 친구가 자전거를 타고 오나? 아니면 길거리 꽃 구경이라도 하나?’ 버스 안에서 연결되지 않는 신호 음을 들으며 속이 바짝 바짝 타 들어 가는데, 어느덧 시계는 약속 시각을 한 시간 반이나 훌쩍 넘겨버렸다.
기절초풍할 지각 끝에 식당에 도착하니, 아뿔싸! 친구는 이미 혼자 밥을 먹고 홀연히 떠났단다. 50년 우정이 90분의 지각 앞에 무너진 것인가 싶어 서운함이 솟구치려는데, 식당 직원이 전해준 소식에 헛웃음이 터졌다.
“그분, 핸드폰을 집에 두고 오셨다는 데요?”
하이구! 무려 2026년 천지에 핸드폰 없는 ‘디지털 원시인’ 둘 이서 한 명은 카톡만 뚫어 지게 보고, 한 명은 시계만 뚫어지게 본 셈이다.
“식당으로 전화라도 하지 그랬어요!”라는 식당 직원의 말에 결국 내 입에서 나간 말은 “그러게 요, 흠…” 이라는 짧은 탄식 뿐이었다.
밥 한 끼 사주려 던 작가의 원대한 계획은 수포가 되고 밀린 수다는 공중 분해 되었다. 돌아오는 길, 시장 가방은 왜 이리 무겁고 베를린의 공기는 왜 이리 쌀쌀한지? 하지만 생각할수록 웃음이 난다. 50년 우정인데 밥 한 끼 못 샀다고 어찌 되 랴, 다음 엔 아예 친구 집 앞에 밥솥을 들고 찾아가야 할까 보다.
빵의 나라에서 수 십 년을 살아도, 결국 우리는 ‘밥’ 없이는 못 살고 ‘정’ 없이는 못 사는 영락없는 한국 사람이니까.
【글: 노석임 작가】 * 편집자 주: 글에 등장하는 ‘모찌’는 노 작가님의 반려견 이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