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오렌지와 하네만 할아버지, 그리고 다시 찾아온 부활절(노석임)

-베를린 생활 55년-

8.  빨간 오렌지와 하네만 할아버지, 그리고 다시 찾아온 부활절

벌써 부활절이다. 흐르는 세월이 어찌나 빠른지 눈 깜짝할 사이에

또 한 번의 계절이 눈앞에 펼쳐진다. 자전거를 배우겠다며 큰맘 먹고 자전거를 마련해 서툰 페달질로 독일 거리를 누비던 50여 년 전 그 시절이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한데 말이다.

그때 우리는 참으로 모르는 것이 많았다. 기숙사 관리인이셨던 하네만(Hahnemann) 할아버지를 하루가 멀다 하고 괴롭혔던 기억이 난다.

방 안에 열쇠를 두고 나와 하루에도 몇 번씩 할아버지를 찾아다니기 일쑤였고, 독일 음식에는 문외한이라 아연실색할 만한 실수를 숱하게 저질렀다.

딱딱한 호밀빵(Graubrot)은 겉껍질이 맛이 없다며 부드러운 속만 파먹고 버렸고, 속이 붉은 오렌지(Blutorange)를 처음 보았을 때는 썩은 줄로만 알고 통째로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기도 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설명만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던 우리를 직접 쓰레기장까지 데려가 차근차근 설명해주시던 하네만 할아버지. 그런 우리를 할아버지는 늘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셨다.

할아버지는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만 되면 병원 정원과 정문에 정성껏 장식을 하곤 하셨다. 독일어를 채 알아듣지도 못하는 우리에게 독일의 전통(Tradition)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해 주시던 모습이 새삼 그리워진다.

부활절 아침, 기숙사 방문 앞에 부활절 달걀과 초콜릿을 몰래 놓아두시며 타국 생활의 외로움을 달달하게 달래주던 그 다정한 손길이 오늘 따라 더욱 생각난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흐른 지금, 우리의 입맛은 참 많이도 달라졌다.

이제는 오히려 버터 한 조각을 곁들여 호밀빵의 단단하고 고소한 겉껍질부터 베어 물어야 제 맛임을 안다.

썩었다고 오해했던 빨간 오렌지 특유의 깊은 풍미를 누구보다 즐기게 된 우리를 보며, 흐른 세월만큼이나 이곳이 우리 삶의 깊숙한 터전이 되었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세월은 풍경도 바꾸어 놓았다. 한국의 설이나 추석처럼 큰 명절이었던 부활절(Ostern)도 이제는 점점 간소해지는 듯하다. 성탄절에는 여전히 온 동네가 반짝이는 장식으로 환하지만, 부활절의 정겨움은 예전만 못하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온 가족이 모여 숨이 차도록 달걀 속을 불어내고 색을 칠해 나뭇가지에 걸며 축제 분위기를 냈었다. 덕분에 한동안 식탁 위에는 달걀찜과 달걀말이가 풍성하게 올라오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나 자신조차 “금방 지나갈 것을 뭐 하러 하나” 싶은 마음에 달걀 꾸미기를 뒷전으로 미뤄두게 된다.

요즘 이웃들의 정원을 봐도 직접 만든 달걀 대신 기성품 장식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정성껏 써 내려가던 부활절 카드는 스마트폰 메시지로 대체된 지 오래다.

독일의 큰 축제가 변해가는 모습 속에서 문득 서운함이 밀려오지만, 그래도 내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하네만 할아버지가 놓아주신 그 달걀과 초콜릿의 온기가 남아 있다.

그 시절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은 단순히 독일의 풍습만이 아니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그것은 낯선 이를 환대하는 너그러움이었고, 작고 소박한 것을 정성껏 매만지는 삶의 태도였다. 할아버지가 보여주신 그 친절은 이제 내가 이웃들에게 나누어야 할 진정한 ‘전통’이 되어 내 안에 머물고 있다.

비록 세상은 플라스틱 장식과 무미건조한 메시지로 채워져 가더라도, 이번 부활절만큼은 하네만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서툴게나마 다시 달걀을 꾸며보려 한다.

흐르는 세월 속에 풍경은 변하고 사람은 가도, 누군가를 품어주었던 그 따뜻한 마음만은 이 부활절의 계절에 다시금 환하게 되살아나길 기도해 본다.

【글: 노석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