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쇠열쇠와 8주의 기다림: 삶의 속도를 배우다(노석임)

-베를린 생활 55년-
9. 베를린의 쇠(금속)열쇠와 8주의 기다림: 삶의 속도를 배우다.
베를린에서의 삶이 반세기를 훌쩍 넘었다.
강산이 여섯 번이나 변했을 시간인데도, 내 코트 주머니 속에는 여전히 묵직한 쇠열쇠 꾸러미가 들어있다.
이것은 집으로 들어가는 유통기한 없는 입장권이자, 1971년대 파독 간호사로 독일 땅을 처음 밟은 이래 내 몸처럼 지녀온 ‘절대 반지’ 같은 물건이다.
요즘 한국은 손가락으로 숫자 몇 번만 톡톡 누르면 ‘띠리링’ 하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는 세상이라지만, 이곳 베를린은 여전히 아날로그의 상징인 쇠열쇠를 고집한다.
새로 지은 현대식 아파트조차 예외는 없다. 도대체 왜일까? 가끔은 이들이 이 불편하고 차가운 쇳덩어리가 주는 ‘보안의 무게’를 일종의 훈장처럼 즐기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반세기 전, 서독의 병원에 처음 배치되었을 때 우리 동료들의 주업무는 환자를 돌보는 일만큼이나 ‘하우스마이스터(Hausmeister, 관리인)’를 찾는 일이었다.
낯선 구조의 문 앞에서 열쇠를 안에 두고 나오는 바람에 복도에서 서성이는 우리 때문에, 당시 관리인들은 아마 퇴근도 제때 못 했을 게다. 조금 익숙해졌을 땐 또 어떤가.
앞집 친구와 짧은 수다라도 떨 요량으로 문틈에 신발 한 짝을 슬쩍 끼워놨다가, 야속한 바람이 ‘탁!’ 하고 문을 닫아버렸을 때의 그 당혹감이란. 신발 한 짝의 배신에 맨발로 복도에 서서 헛웃음을 짓던 그 젊은 날의 초상은 이제 빛바랜 추억이 되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애증의 열쇠’가 큰 사고를 쳤다. 평소보다 뻑뻑하다 싶더니, 살짝 휜 녀석을 조심성 없이 힘주어 돌린 것이 화근이었다. ‘똑’ 하는 불길한 소리와 함께 열쇠가 부러져 버린 것이다.
반쪽은 비정하게 열쇠 구멍 속에 박혀 있고, 나머지 반쪽만 내 손바닥 위에 덩그러니 남았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소동을 듣고 이웃집 자동차 수리공 청년이 비장하게 공구통을 들고 나타났다. “걱정 마세요! 자석(Magnet)으로 낚아 올리면 금방입니다!” 청년의 자신만만한 외침에 기대를 걸었지만, 찰칵하고 달라붙을 줄 알았던 열쇠는 묵묵부답이었다.
한참을 낑낑대던 청년이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아, 독일 열쇠는 자석에 붙지 않는 성분이었네요. 하하.”
결국 동네 만물상 할아버지까지 등판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전체 교체’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였다. 비용은 400유로에 육박했고, 더 기가 막힌 건 새 열쇠 뭉치가 오기까지 ‘8주’가 걸린다는 사실이었다.
8주라니! 한국 같으면 아파트 한 동을 올리고도 남았을 시간 아닌가.
독일에서 ‘Geduld(인내)’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 덕목이다. 아무리 급하다고 발을 동동 굴러봤자 돌아오는 건 “Ordnung muss sein(질서가 있어야지)”이라는 원칙뿐이다.
오죽하면 독일 관공서에서 일을 빨리 보려면 담당자의 발이라도 살짝 밟아서 눈이라도 맞춰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겠는가.
약속한 8주가 지나 전화를 걸어도 그들은 여전히 성인군자 같은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Warten Sie bitte(기다려 주세요).”
어린 자식들 잃어버릴까 봐 목에 걸어주던 달랑거리는 열쇠가, 이제는 중년이 된 자식들의 든든한 삶의 무게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이 고집불통 독일 열쇠와 밀담 중이다.
8주의 긴 기다림 속에서 나는 새삼 깨달았다. 독일 살이란 단순히 언어를 배우고 기술을 익히는 과정이 아니라, 부러진 열쇠 구멍을 보며 허허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그리고 기다림 끝에 오는 안도감을 온몸으로 체득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말이다.
오늘도 나는 문을 닫기 전, 습관처럼 주머니를 툭툭 치며 확인한다.
내 손때 묻은 절대 반지가 그곳에 있는지. 그리고 내일은 또 어떤 느릿한 일상이 나를 기다릴지, 이제는 조급함 대신 잔잔한 미소로 문을 나선다.
【글 : 노석임 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