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는 너를 해치지 않는다(노석임)

-베를린 55년의 삶-
- 죽은 자는 너를 해치지 않는다(Die Toten tun dir nichts)
나는 울었었다. 오직 형언할 수 없는 ‘무서움’ 때문에. 그것은 슬픔도, 기쁨도,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도 아닌 생생한 공포였다.
50여 년 전, 베를린의 어느 병원. 내가 근무하던 병동은 ‘기억(ㄱ)’ 자를 반대로 뒤집어 놓은 듯한 구조였고, 그 꺾어지는 중앙에 간호사 스테이션이 있었다. 바로 옆방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이들이 머무는 곳, 이른바 임종실이었다.
한국의 병실이라면 가족들의 곡소리나 북적이는 간병인들로 사람 온기가 돌았겠지만, 이곳은 달랐다. 다른 환자들과 격리된 그 차가운 공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사진도, 정든 애완견사진도 없는 곁에 놓인 작은 테이블 위에는 마른 입술을 축여줄 면봉 몇 개와 임종 시 연락할 가족의 전화번호, 그리고 때로는 무미건조한 장례 안내 카드 한 장이 전부였다.
깊은 밤, 면회 오는 가족조차 없는 그곳은 지독히도 정막했다. 그 방의 주인공은 ‘얀즈(Fr. Janz)’ 할머니였다.
치매가 심했던 할머니는 낮이나 밤이나 나를 졸졸 따라다니셨다. 동양에서 온 젊은 간호사의 낯선 얼굴과 서툰 독일어 억양을 알아듣지는 못하셨겠지만, 아마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어머니를 나에게서 찾으셨던 모양이다.
우리의 기숙사는 병동 입구와 같은 층에 있었다. 당시 베를린의 기숙사 건물 한 층 전체가 한국 간호사들의 전용 공간이었는데 근무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갈 때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내 뒤를 따라 오셨다.
어느 날은 방 문을 열었는데 그 앞에 얀즈 할머니가 서 계신 것을 보고 가슴이 미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밤마다 마주치는 할머니는 나를 소스라치게 놀라게 하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다.
복도 저 끝 어둠 속에서 하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채, 끈을 묶지 않아 펄럭이는 환자복 차림으로 맨발로 서 있는 할머니의 모습은 영락없는 상상 속의 귀신 같았다.
그 실루엣이 나타날 때면 온몸에 소름이 돋고 형언할 수 없는 무서움이 밀려왔다.
결국 할머니께서 먼 강을 건너려 하시는 저녁 번 동료에게 인계를 받으며 나는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아, 하느님! 제 근무가 끝날 때까지 만이라도 무사히 넘어가게 해주세요.’ 매시간 방에 들어가 갈라진 할머니의 입술에 글리세린을 발라드렸다.
세상의 모든 무게를 내려놓은 듯 평화로운 모습이었지만, 나는 왜 그토록 무서웠을까.
사람이 죽기 전 주변과 정을 떼기 위해 무서운 기운을 내뿜는다는 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통하는 모양이었다.
결국 할머니는 운명하셨고, 이웃 층 동료가 달려와 뒷수습을 도와주었다. 더 이상 그 방에 들어갈 일은 없었지만, 복도를 지날 때마다 누군가 나를 잡아당기는 것만 같아 무서워서 울고 또 울었다. 소리 내어 울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엉엉 울고 있었다.
모든 처리를 마친 뒤, 겁에 질린 내게 동료는 나직이 한마디를 남겼다. “Die Toten tun dir nichts (죽은 자는 너를 해치지 않아).”
5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 이 생생한 기억은 내 베를린 삶의 보따리 속에 담긴 가장 강렬한 조각이다.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며 타국에서 보냈던 그 밤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음을 이제는 안다.
【글 : 노석임 작가】

